청년 시절에 살던 동네가 남현동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예술인 마을이라고도 불려졌습니다. 그곳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집이 있어서 종종 그 앞을 지나쳤습니다. 싱글 주택으로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집을 지날 때마다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흥얼거렸습니다.

최근 그분의 시가 제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 시가 가을에 맞는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시의 내용이 그렇게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그만큼 내 현실이 절박하기에 그 시의 절박성에 공감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가을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매일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쩍새는 울면 목구멍에서 피를 토한다고 합니다.

이게 쉬운 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국화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그 긴세월 봄부터 가을까지 소쩍새가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피를 토하면서 울었더니 결국 국화 꽃 한송이가 피었습니다.

얼마나 목이 아팠을까요? 자신이 울면 목에서 피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국화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매일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핀 국화 한송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가을에 피는 국화는 아름다운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요즘 국화 꽃을 보는 내 눈이 달라졌습니다. 소쩍새의 절절함이 국화 꽃 한송이를 피웠기에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물론 소쩍새가 운다고 국화가...
아름다운 시인의 표현이지요.

기도는 소쩍새 우는 겁니다. 봄부터 그렇게 간절하게 가을까지 웁니다. 그리 또 무엇을 놓고 웁니다.

요즘 새벽마다 소쩍새들이 교회에서 울고 있습니다. 어두운 새벽을 깨우고, 아침을 밝게 하는 소쩍새들입니다. 교회의 눈을 열고요. 울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교회의 소쩍새의 기도도 더욱 깊어갑니다. 소쩍새들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절한지 모릅니다. 목에 피가 쏟아질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만큼 기도의 제목이 만만하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게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쉬운 일 아닙니다.
개인적인 영적 성숙과 영적 부흥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가을에 선포하는 오픈 콘서트 만만치 않습니다.

"기도위에 오픈 콘서트를 짓는다"는 심정으로 기도에 애를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들과 다르게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우는 소쩍새처럼 한달 내내 기도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소쩍새들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더 많은 소쩍새들이 우리 교회에 날라 왔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에 우는 소쩍새들이 더 많이 보였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모든 교회 일은 사람의 차원에서 끝납니다.

국화 꽃 한송이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봄부터 그렇게 피를 토하며 우는 것처럼, 누군가 그렇게 기도의 토함이 있어야 교회에는 영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봄부터 울었던 소쩍새처럼 우리 모두가 이제..지금..당장..기도의 무릎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파수꾼의 수고와 집을 세우는 노력이 허사가 됩니다.

기도로 오픈 콘서트 올리길 바랍니다. 이건 견고한 진을 파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모든 기원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하게 하셨구나...
그래서 기도의 눈물이 있었구나...

소쩍새들아 이곳에 오거라.
우리 함께 한송이 교회 꽃 피우자...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