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광장에 가면 레닌의 시체, 중국의 천안문 광장에는 모택동 시체가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 방부제를 발라서 미랍 인형처럼 만들어 놓아서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체들을 위대한 인간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경외의 대상으로 볼 것입니다.

그런데 난 살아 생전 한 국가와 이념의 하나님 노릇하다 죽은 뒤 그 시신이 흙으로 돌아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저주받은 한 인간의 몰골을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호흡과 영혼이 떠나가 버린 인간의 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신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토록 시신으로 남는 것은 무서운 저주입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토굴속에 갇혀 있다가 목베임을 당해서 죽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바울의 목은 칼에 떨어지면서 세 번이나 튀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의 죽음을 비참한 죽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의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그가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는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했음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가치는 죽음의 형태나 시신의 겉모습으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죽음의 참 가치와 의미는 그 죽음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시발점이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판가름 됩니다.

“내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아노라.”(요12:49-50)

믿는 자의 죽음은 전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 성도님의 가정을 위로하러 갔습니다. 남편과 14살된 딸만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그 어린 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희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너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평강을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생명으로 제 어머니를 품고 계심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딸입니다. 어머니의 행복은 곧 저의 행복이고, 어머니의 불행은 곧 저의 불행입니다. 지금 제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품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다면, 그것은 곧 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어린 아이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어린아이라도 기도의 깊이에 감동을 받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은 구원의 깊이와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를 깨달은 사람만 할 수 있지요.

구원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원한 생명, 영생이 무엇인지 알고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그 어떤 형태의 죽음도 불행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미 얻은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누리기 시작하는 은총의 순간임을 믿고 어떤 어려움과 환난에도 승리하세요.

신앙은 이처럼 위대한 확신을 주고 주변 사람에게 믿음의 소문을 들려줍니다. 구원 받은 자답게 나 만의 주님 사랑하는 법을 습관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넉넉하게 승리케 하시는 주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