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우를 만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성도의 이야기에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정말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인줄 몰랐습니다. 가정, 개인, 모든 것이..

이야기를 다 들었는데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성도님은 지금 답이 없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삶...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 분 마저 무너진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답이 없을 때가 참 많습니다.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갈수록 악화가 되어갑니다. 답이라도 보인다면 어떤 것도 기다리고 참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은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기에 망막하고 낙심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답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한 교회를 책임지고 섬기는 저로서도 답이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말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교회 사랑 뿐인데 내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를 해도 망막합니다. 온 몸이 피곤할 정도로 이것 저것 노력을 하는데도 영향력이 없습니다. 피리를 대차게 불어도 춤을 추지 않습니다. 모든 방법을 내어 놓아도 결과는 늘 무반응입니다. 정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너져야 합니까?
이제 안 되니 손놓고 있어야 합니까?

이럴 때에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방법이 있습니다. 정답이 없을수록 최선의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전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이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받기 전에 유명한 해군 제독인 리코버 제독과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해군 제독은 젊은 장교 카터에게 전술, 전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 태도에 이르까지 날카로운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제독은 화제를 돌려서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공부했는가를 묻습니다. 또 빙그레 웃더니 성적은 어떠냐고 묻습니다.

카터는 성적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점 받았고 몇 등 했다고 대답하니까 이제 끝날 줄 알았더니, 다시 카터를 보면서 제독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 성적이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카터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글쎄요…최선을 다했다고야 말씀 드릴 수는 없겠지요.”

이때 제독은 무섭에 젊은 카터를 쏘아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자네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 날 밤에 카터가 이런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이 해군 제독이 던진 것과 비슷한 질문을 던지실지 모른다. ‘너는 최선을 다했느냐?’ '주님 최선을 다했다고야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만약 주께서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날 그는 인생의 좌우명을 얻었습니다.
“Why not the best?”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전5:10)

인생의 답이 없을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매님 힘 내시고, 최선을 다하세요.
제가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혹시 답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격려합니다.
있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힘 들어도 최선을 다하세요.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