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화가 고야(Goyα 1746~1828)의 그림 중에 '이빨 사냥'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그림 속엔 죽은 사형수의 시체가 교수대의 줄에 매달려 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 앞에서 한 여인이 무서움에 떨며 시체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기에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도 뒤로 돌린 채, 한 팔만을 뻗어 시체 입 속의 치아를 뽑기 위해 시체의 입속에 손을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시체 곁에서 결사적으로 이빨을 뽑으려는 극적인 모습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의 죽은 시체, 그것도 교수형으로 사형당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시체라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합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왜 그 그 무서움을 무릅쓰면서서까지 한낱 시체의 치아를 뽑으려는 이런 해괴한 행동을 할까요?

고야가 살던 18세기 스페인에 만연해 있던 미신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형당한 시체의 치아엔 신통한 힘이 있어 그것을 지닌 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미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수형의 시체의 이빨을 뽑으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고야가 '이빨사냥'을 그린 것은, 이처럼 하찮은 미신에 빠진 어리석은 여인 한 명을 조롱하기 위함일까요? 고야는 이 여인을 통해 당시 카톨릭 신자들을 비판하려 함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이 국교였던 스페인의 모든 국민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집집마다 예수와 마리상 성상으로 장식되지 않은 집이 없었고, 주일마다 성당에서는 거룩한 미사가 드려졌습니다. 사람들은 성당에서나 집에서나 자기 소원 간구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생활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 자신의 가족이 형통 할 수만있다면 하면 모든 자기 욕망을 성취하는 길만 있다면 크리스천일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시체의 이빨을 사냥하고 있는 그 미련한 여인처럼 말입니다.

당시 고야가 보기엔 이런 이중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들이 참된 크리스천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고야의 '이빨사냥' 그림은 당시 신자들이 누구나 이와 같이 신앙과 세상의 분리된 자아에서 신앙적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세상적 영향으로 결국 자기 얼굴을 가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 행위가 비록 믿음의 비참한 지경에 이른 것이라 할지라도 용감하게 자신의 욕망을 결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 그림 속에서 죽어 버린 인간의 인간의 믿음과 양심을 봅니다.

양심이 죽어 버렸기에 인간은 교수형을 당한 시체를 탐합니다. 결국 교수형의 시체보다도 더 못한 인간의 신앙과 양심을 고야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 신자들도 자신들이 잘 되는 길만 있다면 그 어떤 마력의 이빨을 차지하기 위해 시체의 입을 벌리고 그 속에 손을 넣은 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육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들입니다. 돈만 더 얻을 수 있다면, 내 욕망을 채울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짝뚱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들의 과감한 이중적 가치관을 봅니다.

죽은 자의 이빨마저도 서슴없이 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양심이 죽어 버린 현대인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들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에 개인적으로 귀중하고 탐나는 목적물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죽은자의 이빨을 훔치는 비참한 자기 행동임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얼굴을 돌리고 수건으로 가리고 그 비참한 행동을 실행합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이게 신앙의 소외입니다.
행동에서 신앙이 소외되면 비양심적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신앙은 이렇다고 합리화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신앙의 한 부분을 애써 망각하려는 이 모순이 깊으면 깊을수록 소외의 폭과 깊이가 더욱 심화됩니다. 신앙은 공허해지고 믿음은 추상화로 그려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땅에서 신자로 살아가면서 이게 큰 숙제입니다. 신앙적 모순을 어떻게 풀 것인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풀기 참으로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안 해도 되는 숙제가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해야 할 숙제입니다.

우리 눈을 가리는 모든 신앙적 장애물, 그 장애물을 걷어치우고 신앙적 나와 세상적 나의 일치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무너진 곳에서 진정한 내 탄생합니다.

이 땅에서 이 숙제를 잘 마치고 주님이 계시는 본향으로 잘 들어가야 할텐데 하는 간절함이 내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그림입니다.

*그림 좋아하는 한 성도에게 보냈던 글을 개인적으로 확장했는데 당시 5장이 되었네^^좀 어려울 것 같아서 줄이고 줄였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