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활인’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살린다는 말입나다. 우리 속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와 같지요.

주변에서 “목사님은 슈퍼맨이다” 또한 “담임 목사님 자리는 힘들고 외로운 자리다”는 위로의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맞아요. 쉽지 않은게 목회자의 삶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모든 행정, 일군 부족하면 노가다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합니다. 슈퍼맨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사람들의 이런 위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외로워지고 더 힘이 빠지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상하지요. 위로의 말인데요.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가 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사람이라서 힘들거나 괴로울 때가 생간다. 그런데 성격상 나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힘들다’ 고 말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힘들게 된다. 나는 주위를 힘들게 하거나 폐 끼치는 일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손선수 말에 공감합니다. 무엇이 부족해도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돈이 없어도 없다고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려워도 어렵다고 말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말도 듣기 싫어합니다. “목사님 교회가 너무 커요 그런데 일군이 ...” “예배가 너무 좋아요. 설교가 은혜가 커요. 앞으로 교회가...”이런 말 의미가 있지만 꼭 남의 말로 들리기에 그렇습니다. 옳은 말안데 위로가 안 되고 더 답답합니다.

신자로서 ‘촌철활인’이 필요합니다.

성경 읽기의 본이 된 Robert Murray M’Cheyne 이런 말 했습니다. “There is no argument like a holy life.” 신자의 말의 영향력은 거룩한 삶에 비할만한 논증이 없다는 겁니다. 신자의 말은 말에 끝나지 않고 삶이란 무게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삶을 담아내지 못한 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삶이 전제되지 못한 말은 단지 소리로 쉽게 사라집니다. 옮은 말이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나 말씀 따라 사는 구별된 삶은 내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됩니다. “목사님 걱정하세요.” 주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능력이 됩니다. 별 말 아닌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말씀의 무게가 내 삶을 끌고가는 사람이 되있으면 합니다. 결국 말하고 듣는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내 삶이 내 말의 무게가 되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요즘 힘들겠다는 따뜻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대신에 힘들기에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하려 애씁니다. 그리고 위로하는 내 말의 영향력을 위해 삶의 무게를 가지렵니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