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목회 할 때에 경험입니다. 

도로에 워낙 차가 많아서 옆 차선으로 바꾸려 했기에 그 선에서 계속 오던 차가 갑자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차가 내 옆에 차를 세우고는 창 문을 열고 입에 담지도 못할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고, 난 그저 그 사람의 화가 식을 때까지 쏟아지는 욕을 듣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 아들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왜 사기꾼이예요. 왜 그런욕을 듣고도 가만 계세요?” 아이는 오늘 낮에 그 운전사가 내게 욕설을 퍼부을 때 ‘이사기꾼아’라고 한 말이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않지 않고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욕설을 듣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아이에게 근사하게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싸울 때는 온갖 소리를 다 하잖니. 그 아저씨도 워낙 화가 나니까 생각 없이 그냥 쏘아댄 것이지. 그래서 아빠는 대응하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아빠는 목사 아니니. 참아야 되는 거야”

아이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있어. 난 아빠가 그런 경우에는 싸워서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근사하게 아들에게 말은 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아빠는 사기꾼이 아니잖아!”는 아이의 말이 사라지지 않고 제 마음속에 남아서 저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목사로서 평생 처음 들은 욕이있기에 그 날 밤 꼬박 새웠습니다.

당시 난 30대 후반, 자부심으로 목회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누가 내 자신을 향해서 비난하면 용납할 수 없고 견딜 수없었던 대단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정말 내가 사기꾼이 아닐까? 겉으로는 내가 거룩해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기꾼과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룩한 공동체의 직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온전히 맑고 투명한 삶을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2:15)

그러자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이 십자가에서 “당신이 하나님이냐!”라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죽어가신 주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사기꾼이야'라는 말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살아가려는 내가 못나 보였습니다. 앞으로 그런 오해, 그런 비난, 더 강력한 언어적 폭력을 들을 수 있을텐데 말 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으로, 주님이 겪으셨던 비난, 욕, 오해 나는 안 받아야 할 사람으로 살아온 내 모습이 아들에게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당시 매우 참담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 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추하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어 주고 계신다는 확신입니다. 사기꾼 같은 나를 자신의 몸된 교회의 종으로 삼아서 영혼 구원, 교회를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계속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참담했던 제 심령 속에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온 몸으로 느겼습니다. 

젊은 날에 내 목회의 공동체 비전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위스 라브리 공동체의 설립자인 프란시스 쉐이퍼 박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계신다.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
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We are not building God’s kingdom; God is building his kingdom, and we are praying for the privilege of being involved.”

“하나님의 일을 하는 특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할 뿐이다”는 당시 큰충격이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날 부르는 나에게 단지 기도만 한다는 것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한국 교회는 걱정하지 말라 양승원이 있다 “하면서 내가 한국 교회의 수호자처럼 한국 교회를 세울 수 있고, 내가 교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ㅎㅎ^^

지금 돌아보면 우리가 목사이고 평신도라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역할과 관계없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움직이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습니까?

난 주인의 분부를 받들기 위해 씨 뿌리고, 물 주고, 즉, 그저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심부름꾼인 내가 사기꾼이란 소리를 듣든, 좋은 목사라는 소리를 듣든, 어떤 소리를 듣든 내 목회의 현장에서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기꾼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먹는 비참한 현실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이런 나를 교회 일군으로 귀하게 쓰시는 주님께 내가 잊지 않고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은 '겸손'입니다. 그리고 평생 내 입에서 나올 말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 착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쁜 소리를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고 좋은 목사처럼 위선 떨지 않으려 합니다. 사기꾼이라 하면 하나님 눈에는 그렇게 남을 속일 수 있는 더 나쁜 사기꾼 자질이 내 안에 차고 넘치기에 그런 소리 듣고도 담담하게 충성을 하려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서 쓰시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날이 오겠지요. 내가 하고 싶어도 따를 수 없는 육체의 연약한 날이 오겠지요.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나름대로 ‘한점 부끄러움 없이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살아가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이제 떠날 날이 온 것 같습니다. 

언제가 한번 아들에게 물어보렵니다. “지금 아빠가 사기꾼 목사 같니?” 황당해야 할 아들 모습이 되길 기대합니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