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비결은 정말 간단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것들을 예습하고, 공부한 것을 복습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부모에게는 이것이 보입니다.

이미 공부해 보았기 때문에 예습과 복습이 공부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좀처럼 예습 복습을 안 합니다.

부모가 너무 중요하기에 자주 이야기하다보면 잔소리로 듭습니다.

너무 중요하기에 부모는 자주 강조하는데 그것이 잔소리로 들립니다.

중요한 것이 잔소리로 격하되어서 들리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로서 성경을 꾸준히 읽고 있기에 성경이 신앙 생활에 절대적인 것을 압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성경을 잘 안 읽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계속 듣는 것이 성경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것이 귀로 안들어오고 잔소리로 들립니다.

혹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결심에서 성경 읽기를 시작을 했는데 어느 순간 성경 읽는 것을 포기합니다.

“왜 포기할까?”를 목사로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 것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꾸준히 읽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성경 읽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나타납니다.

최소한 3번 정도는 읽어야 성경의 능력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됩니다.

이 정도는 읽어야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내 생각에서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로렌스 형제가 ‘하나님의 임재연습’에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친해지고 친해져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힘이 없는 것은 주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큰 실수라 생각해서 요즘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설교, 성도들에게 전해 줄 것에 집중합니다.

내 양식이 아닌 타인의 양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QT로 보았고, QT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QT를 주변 목사나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작년부터 교회적으로 생명의 삶을 갖고 QT를 권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T의 축복은 성경이 내 양식이라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내 눈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주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QT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시험, 유혹, 고통을 이기는 사람으로 성장이 됩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주님을 잊어버리면 은혜가 사라지기에 시험이 쉽게 들어옵니다.

마귀에게 유혹당해서 지는 신앙은 100%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소원하는 교우들에게 성경을 안 읽는 것은 죄보다 더 치명적인 것입니다.

윤리적인 죄를 짓는 것만 죄가 아닙니다.

친밀한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분을 무시하는 죄는 더 큰 죄입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안 읽는다고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예전과 비교하여 영적으로 수준 높은 평신도들이 갈수록 적어진다고 걱정합니다.

교회를 끌어가는 탁월한 평신도 리더들이 적어진다고 긴장을 합니다.

제가 느끼는 위기는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느끼는 위기는 한국 교회가 부족한 것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 습관들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현실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개혁의 위기에 들어왔습니다.

종교 개혁은 교회의 이런 위기에서 시작었습니다.

영적 위기를 느낀 소수의 깨어진 자들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영적 위기를 느낀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출발한 종교 개혁의 핵심은 ‘아드폰테스’입니다.

‘아드’는 ‘~을 향해서’라는 뜻입니다.

‘폰테스’는 ‘샘물, 원천’입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원천을 향하여’입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 ‘근본으로 돌아가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종교 개혁은 한 마디로 ‘근원,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의 근원,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그 자리가 성경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성경을 읽는 것이 개혁의 원천입니다.

평신도들의 손에 성경이 다시 들려지지 않는 한 한국 교회 위기는 계속됩니다.

교회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5)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꺼내어 되뇌일 수 있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것과 같습니다.

위급할 때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마음 속 휴대용 성경을 지녀보세요!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