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의 놀라운 능력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아이들의 울음 소리만 듣고도

'아픈지, 배고픈지, 무엇에 놀랐는지'를 아내가 아는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내가 아이가 운다고 무조건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울음에는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아이가 우는데 왜 안 가?” 아내의 답입니다.

“아이의 울음에는 잠자다가 뒤척이며 칭얼거리는 ‘가짜 울음’이 있는 가 하면,

정말 무엇인가 필요해서 절박해서 터져 나오는 ‘진짜 울음’이 있어…”

엄마가 이렇게 자기 아이의 진짜 울음과 가짜 울음을 식별하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의 기도를 구별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짜 기도’와 ‘가짜 기도’를 분별하십니다.

요즘 기도에 사활을 걸고 새벽부터 틈만 나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기도의 위기를 온 몸으로 감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 기도의 위기를 온 몸으로 느낍니다.

교회에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수년간 하루도 아니 한 순간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소원이 이미 상사병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병든 교우를 향한 안타까움이 잠을 못자게 합니다.

그런데 너무 간절하다 보니 무릎만 끓으면 위의 기도 제목들이 자동으로 내 입술에서 줄줄 나옵니다.

자꾸 의심스럽게 내가 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닌지,

타성에 젖은 무릎의 모습이 아닌지 자꾸 하나님이 날 흔들어 댑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절박한데 이상하게 이 기도의 제목들 조차 깨져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면서 내 기도의 위기를 느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며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기도 자체만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공식에 갇혀 있으면서도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 가운데 그 분을 열심히 ‘찾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찾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열망과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는 기도는 형식일 뿐입니다.

단지 형식일 뿐인 기도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 한 분께 모으고, 간절히 바라다 보고 온 마음이 깨뜨려지고

자기 자신까지도 깨뜨려지는 것 같은 기도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을 찾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기도하면서 갈증이 생깁니다.

기도하면서 내가 영적으로 위기를 느낍니다.

기도하면서 교회가 영적으로 위기를 느낍니다.

더욱 영적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갈망이 생깁니다.

기도가 기도를 깹니다.

기도가 당신을 깹니다.

교회를 깨웁니다.

(이번 주 부터 드디어 한 교우가 함께 매일 새벽에 기도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그 성도를 격려하고 후원합니다.)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