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말씀 예배에 귀가 안 들리는 나이드신 성도님이 참석합니다. 성경 공부 진행에 종종 큰 소리로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무탈하게 목표한 과정을 끌고 오고 있습니다. 한 성도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의 종입니다!!!” 내가 이상하세요? 우리 교회 가족이니까요....

우리 부부는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부부가 개를 데려 오면서 우리 부부는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개가 생기기 전에 아내는 개의 털과 냄새에 대해서 아주 민감했습니다. 개 냄새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닙니다. 집에 들어가면 개 냄새가 난다고 아내는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의 문들을 열어놓고, 공기 청청기를 들여놓았습니다.

나는 개가 내 곁에만 오면 눈을 주지 않고 피했습니다. 냄새가 싫고 내 몸에 개 털이 붙는게 싫었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그럴수록 개는 더욱 달려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개 냄새와 털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개하고 잘 지냈습니다. 개의 털을 마다하지 않고 개와 함께 눕기도 합니다. 또한 남편을 위해 간식을 만들지 않는(?) 아내가 개들을 위해서 열심히 간식을 만들어서 그것도 인터넷을 뒤지어서 건강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제 개들은 아내만 보면 좋아서 어쩔줄 몰라 가슴에 안기고 산책을 할 때면 아내 주위를 맴돌곤 하고,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합니다.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예의상 그냥 꼬리를 한번 흔들어 주고 난 후 아내에게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아래층에서 이층으로 올라와서 나를 보면 그냥 지나치고 아내가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이놈들이 사람을 무시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개 냄새가 역겹기는 하지만 그 냄새를 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달갑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개에게 자신을 온전히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내에게 참으로 희한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처럼 개와 더불어 사랑을 나누다 보니, 개의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 개털이 싫어서 개를 안 키우겠다고 한 아내가 언제부터 개 냄새가 나지 않고 개털의 알러지가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집의 개들이 냄새가 사라졌거나 아내 코가 무디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개를 사랑하다보니 풍기는 그 냄새까지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더 이상 거슬리지도, 역겹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아내가 사랑하는 개의 냄새일 뿐입니다.

아내의 변화를 통해서 발견한 영적 은혜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나를 나누고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경험하고 확인한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니 이 모든 일들이 신기하게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개를 통해서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난 지금도 개들이 나갔으면 하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언제부터인지 가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가족이 된 것입니다. 특히 큰 아들은 직장에 갔다 오면 개들과 얼굴을 부비고 난리(?)입니다. 작은 아들 부부는 부모처럼 개들을 돌봅니다. 이제 개없는 우리 집은 생각하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비록 추한 냄새를 품기며 미물에 불과한 개일지라도 나를 온전히 주면 이와 같은 사랑과 기쁨을 주고 받을진대, 하물며 사람에게 나를 줄 때에 그 결과가 어찌 개와의 관계만도 못하겠습니까?

이번 주일 혹은 언제 다른 주일에 할 내용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6)

여기 ‘우리’에 예수를 부인하는 다른 양들, 평생 예수에게 깐죽대던 바리새인, 예수를 죽인 로마의 군인들, 목적이 이루어지면 예수를 배신한 백성들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이성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자들, 결코 우리와 한 가족이 될 수 없는 자들이 ‘우리’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든 가능한 멀리해야 할 무리들이 나와 함께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배알도 없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요?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우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7)

다른 양들을 위해 당신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버렸기 때문에 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하는 짓이 아무리 역겹고 추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면, 당신을 버리면, 당신을 제물 삼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도구로 삼아 그들을 살리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 우리 안에서 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더러운 인간의 냄새는 얼마나 역겨우시겠습니까? 아마도 인간이 맡는 개 냄새만큼 역겹겠습니까? 그보다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 개는 겉으로만 냄새를 풍기지만, 인간은 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더러운 냄새를 죄로 가득한 속으로부터 밤낮 발산하고 있습니다.

나같이 역겨운 악취를 풍기던 죄인인 나를 한 가족으로 받아주신 이런 하나님의 믿음을 본받고 싶습니다. 끝까지 나를 믿어주던 하나님의 믿음을 평생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냄새가 나는, 우리 공동체 안에 냄새를 품기는 사람들을 주님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제 주님처럼 나를 버리는 훈련에 더 깊이 들어갑니다. 이것은 나의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그런 인간들을 만나는 상황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역겹고, 수준이 맞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나의 피와 살이 마르는 한이 있어도, 여전히 그를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대하려 합니다.

이것이 일상의 삶 속에서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상황을 회피하고서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피와 살을 말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상황과 그 사람을 피하지 마세요. 진정 주님을 믿는다면 그에게 여러분 자신을 주세요. 여러분의 손과 발을, 머리와 마음을 온전히 그를 위해 버리세요. 사랑하세요. 정말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만들어준 가족처럼 사랑하세요.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다른 양들을 우리 공동체속으로 인도해 들이는 사랑의 도구가 되세요.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6/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