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기도 하면서 주님의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신앙 생활하는데 이기는 경우가 많으냐, 지는 경우가 많으냐!” 이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기기 위해 신앙 생활 한 것 같습니다. 성격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승부를 좋아하는데 승리를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영역에서 ‘내 안의 주님과 내가 다투면 누가 이길까?’를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집과 내 고집이 부딪히면 항상 내가 더 고집스럽습니다. 주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부딪히면 내 생각이 더 소중합니다.

 

내가 주님을 이겨 먹을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분명 신앙 고백했는데 난 그 분의 종이라고 매일 다짐하고 고백하는데, 누가 내 삶을 보면 그렇게 인정할까요?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고 삶이 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시험들고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어제 하루종일 내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목적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밖에 나가지 않고 글을 쓰고, 성경을 읽고 하는데 새벽에 주신 음성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인이고 예수님이 종인 것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너무 주님께 미안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이가 그리스 앞 바다의 에게해에 떠 있는 작은 외딴섬에 홀로 사는 수도사를 찾아갔습니다.

 

높은 바위 위에 있는 작은 방에서 홀로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는 수도사에게 젊은이가 묻습니다. ‘요즘도 악마와 씨름하시는지요?’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늙고, 내 안의 악마도 늙어서 더는 씨름하지 않는다오. 그런데 대신에 요즘은 하나님과 싸름하고 있지요.’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신다고요?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길 바라나요?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아니오, 하나님께 지기 위해 끊임없이 씨름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신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기 위해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제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흉내를 내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예배, 기도, 봉사가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하나님께 지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도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기 위해 무릎을 끓는 것입니다. 힘든 교회 봉사도 하나님께 무릎 끓고 패자로 영원히 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난 죽고 예수님만이 살아났습니다.

 

목회를 오래 하신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집을 바치는 사람도 보고 땅, 전세금, 피를 뽑아서 바치는 사람까지 보았지만, 성질을 뽑아 바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자, 또는 예수님의 노예, 종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바울은 늘 자신을 종, 혹은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종은 구조적인 의미이고 일꾼은 자발적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신분은 자신의 모든 의지를 동원해서 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결단으로 종, 일꾼이 된 것입니다.

 

내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거룩한 결단을 향한 거룩한 삶의 공표입니다. 어느 상황, 어느 장소, 누구를 만나도 이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그 분이 하라는대로 움직이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이 아니라 지는 삶, 패자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5/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