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성 폭행과 마약을 한 연예인들의 추한 이야기들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아마도 은밀한 행위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폭로되기에 더 충격적인 것 같다. 소위 단톡방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오고가는 메시지들이 공개화되면서 숨겨 놓은 ‘끼리끼리’ 은밀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제 단순 공범자로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사적인 대화 공간인 단톡방에서 이루어진 무수한 대화, 사진, 영상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을 왜 순간 순간 잊어 먹고 이런 엄청난 짓을 했을까?
아무도 모르는 자기들만의 사적 공간이기에 대화, 동영상, 사진을 올려도 된다는 착각에 왜 빠질까?
왜 그런 나쁜 행위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을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만 받아도 일탈의 유혹은 상당부분 억제되는 것 같다.

거리에 사람 눈을 그려 넣는 것만으로 범죄 발생율이 줄어든다고 한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가 거리 곳곳에 속도를 알려주는 전광판 속도계들이 내 속도를 알려주면 나도 모르게 급하게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 놓는다. 경찰이 쫓아오는 것도, 누가 티겟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이것이 도덕과 규범을 일깨워주는 ‘시선의 역할’이다.

도덕적 해이와 일탈을 막아주는 감시와 규제 그리고 길에서 벗어났을 때 제 길로 돌아가라고 상기시켜주는 ‘리마인더-시선의 역활자’인 것이다.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라는 나름대로 하루종일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자는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관계없이 언제나 스스로 자제하도록 만들어주는 강력한 힘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하나님의 의식으로부터 나온다.

나에게 ‘내 안의 시선, Watcher’는 어깨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내 행동이 옳은지 알려주고, 내 마음의 경향이 바르지 못함을 판단해 주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영성 일기인 ‘주님과 하루 함께 하기’를 쓰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불편한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라는 글을 통해서 '내 안의 시선,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가는 신자의 삶은 하나님을 의식할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나님을 의식할 때와 안 할 때 바로 여기서 일탈과 범죄, 그리고 자제와 양심의 길이 갈리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혹시 우리가 이탈되어도 잘못된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고 원래 내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혹시 그대가 흔들리지 않는 양심과 도덕적 올바름을 지니고 있다면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가 필요없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양심에 따라 바른 삶을 산다면 ‘내 안의 시선, Watcher'와 함께 '주님과 할루 함께 살기’라는 글 쓰기도 권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일탈을 막아주는 ‘내 안의 시선, Watcher’가 당신에게 필요하다. 내가 신자다운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바른 감시와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게 그래서 중요하다.

매일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를 지금이라도 시작하라. 매일 영성 일기를 쓰듯 자신에 관해서 글을 정직하게 투명하게 써라. 다른 사람이 읽고 불평하고 비난해도 신경 쓰지 말고 시작하라! '내 안의 관찰자, 하나님'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만약 마약을 하고 나쁜 행동을 했던 그 연예인들이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자신들에게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을텐테…

당신도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이 공정한 '내 안의 시선, Watcher-하나님을 Reminder'로 수시로 의식하는 감시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5/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