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이 거룩함을 얻었고,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완료시제로서 우리가 이미 거룩함을 다 이룬 상태이고, 또한 완전해져 있는 상태임을 나타낸다.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는 구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릴 보면 아직 우리는 부족함이 많고 계속 넘어지고 시험들면서 허덕거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멈추자.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이런 표현들이 다 그리스도께서 몸을 드리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몸을 드리신 제사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스스로 이룬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미 완전되었다. 할렐루야!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었지만, 예수를 힘입어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이 숙제를 이렇게 풀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서로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 구체적 방향이 ‘사랑과 선행의 격려’다. ‘격려’는 ‘도발,' '화를 돋음’의 의미를 가지는 매우 강한 단어이다. 우리 말로 하면 '부추김'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부추겨야 한다는 뜻이다. 부추김이 나쁜 방향(이간질, 불평, 끼리끼리등)으로 작용하는 일을 우리는 많이 경험한다. 이런 부추김들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과 선행의 부추김은 다르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유익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에는 ‘안락의자 신자들’이 너무 많다. 섬김에는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의 영혼만을 다독거리고 공동체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길 바라는 신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기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사랑과 선행의 부추김이 활발하게 교회에서 서로간에 일어나면서 자극을 주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도들이 서로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처럼 모이기를 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휘험한 일이다. 특별히 그 날이 가까움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종말의 성도들은 더욱 교회 공동체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를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합시다. 또한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합시다."(히10:24)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의 입장이 되어보자.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했더니 핍박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기 어려워지고 말았다. 예로부터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부정한 자들 또는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결국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믿었더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되었기에 땅의 성소에 미련을 갖지 말고 하늘 성소에 드나드는 신자들이 서로 마음을 합해서 모이기를 힘쓰고 위로받고 격려를 하라는 것이다.

어디서나 사랑과 선행을 부추기고 격려하는 신자들의 모임, 바로 그곳이 성전이다. 교회간판이 걸린 곳만 성전이 아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신자들이 모이는 그곳이 성전이기에 서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이렇게 모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공동체 만들자!!!

(양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3/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