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사튼이 61세에 발표한 ‘나 이제 내가 되었네(As we are now)”에서 이런 글이 소개됩니다.

문제는 노년이 되기 전까지는 그 나이가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년에게도 노년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낯선 나라와 같다.’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 땅의 생은 처음이라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어은 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직 가보지 않은 노년이라는 길은 덜컥 겁부터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2019년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약간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안 걷자니 그렇고, 걷자니 선택의 무게가 벌써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도서를 쓴 솔로몬의 지혜가 도움이 됩니다.

이미 그 길을 미리 가 본 이들의 조언, 솔로몬을 나침반 삼는다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1:3-4)

 

젊은 날에 읽었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레오 버스카 글리아였습니다.

대학에서 18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저자는 사랑했던 제자의 자살로 인하여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러브 클래스’라는 교육기관을 열어 사랑학을 강의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단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아마 이 영향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좌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이 배운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살아가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외적 발육이 성장이라면, 내적발육은 성숙입니다.

외적발육인 성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성장은 20대에 정점에 달했다가, 그 이후부터는 도리어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에는 끝이 없습니다.

성숙을 위해 애쓰는 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나아가 원숙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도 계속 성숙해져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겉사람의 성장이 아니라, 속사람의 성숙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멈춘 것처럼 참 보기 싫은 것은 없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이 여기에서 생각났습니다.

“진리를 향해 가장 완고하게 대적하는 자는 진리를 어설프게 알 뿐 진실로 믿지 않는 자다.”

 

성숙은 배움에서 옵니다.

특별히 사랑에 성숙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릭 프럼이 ‘Loving is art’라고 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기술’이라는 말은 배움을 전제로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배우세요.

 

특별히 예수님께 배우세요.

예수님을 깊이 배우며, 예수님과 사람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평생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가족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영적 가족으로 묶어주신 한 교회의 교우들입니다.

 

삶의 매 순간 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고, 그 다음이 삶의 안정입니다.

안정 다음에 믿음이 오지 않고 믿음 다음에 안정이 옵니다.

 

삶의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로서 내가 나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나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나 이제 내가 되었습니다.

한 살 더 먹은 내가 내 모습입니다.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2/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