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은 만물의 본질을 밝혀 줍니다. 예를 들어 진품과 진짜를 적당하게 흉내 낸 모조품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진품은 진품임이 절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조품은 어쩔 수 없이 가짜임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소중함과 참된 가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시간만이 참된 것과 그른 것, 진짜와 가짜를 분별 해 주며, 만물의 본질적 실체를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무엇이든 성급하게 판단하는 잘못을 범치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결여된 판단은 그릇되기 쉬움을 아는 까닭입니다.

사람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 예전에 교회에서 교회 예산 마음대로 썼다는 소문 들었네요.”
“예전에 다녔던 사람들로부터 목사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정보를 들었는데…”
“그 후부터 이상하게 목사님에게 신뢰가 안 갑니다.”

교회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나서 교회를 세우는데 가장 힘든 일이 나쁜 이미지 회복입니다.
교회를 어렵게 했던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개척을 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대한 어떤 정보를 듣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정보를 듣고 정죄하면 실수를 합니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첫 판단이기에 흔히 사실과 동떨어진 편견이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를 가리켜 성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성도로 불린다고 모두 다 같은 성도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위선과 거짓과 세상 사람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성도가 일군이라든지, 좋은 성도라든지
한 성도가 일군이 아니라든지, 나쁜 성도라고 성급하게 판정하면 안 됩니다.

성도의 진실됨과 참됨은 일시적인 아닌 영원한 가치이기에, 그 사람의 진위 여부는 반드시 시간의 흐름속에서만 판가름 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진실이 없다면 그 사람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성도가 진짜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를 시간의 흐름속에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당사자의 말로 드러납니다.
당사자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당사자가 하는 일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그가 일을 추진하는 방법과 수단을 통해 가시화됩니다.

그러나 제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에 의해 확인됩니다.
한 인간의 주위를 어떤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사람됨이 확인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찾았습니까?
대체 누가 여러분을 필요로 했습니까?

술꾼들이 여러분을 찾았다면 성도라 불리우지만 실은 당신은 여전히 술꾼입니다.
세상을 탐닉하는 자들이 찾았다면 당신은 성도의 무늬지만 여전히 쾌락의 노예입니다.
거짓된 삶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 싸여 있다면 당신은 성도이지만 여전히 추한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거룩한 성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가 당신을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이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당신을 애타께 찾고 있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이 당신을 주일 예배자로 간절하게 찾고 있을 겁니다.
목사가 당신을 함께 일할 동역자로 찾는 것은 두말 할 필요없습니다.

전 늘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토요 새벽 기도회에 제가 여러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 한 시간 새벽 기도회에 나올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토요일에 간절하게 홈처치를 섬길 목자를 찾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10년 동안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춥고 배고픈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원근각처에서 무려 400여 명이나 되는 무리가 다윗을 찾았습니다. 다윗을 그저 한번 만나 보기 위함이 아니라 아예 다윗과 함께 살기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하필이면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도망자 다윗을 필요로 했을까요?

다윗에게 비록 돈은 없었지만 세상의 쾌락도 없었지만, 그들은 날마다 다윗을 통하여 진리를 맛보고 생명을 호흡하며 사랑을 얻고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다윗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삶이새로워졌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세월이 변해도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다윗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성도였습니다.

다윗이 이런 참 성도가 아니었다면 2-3년 지나고 보니 거짓된 인간임이 드러났다면 그들은 도망자 다윗을 벌써 떠나 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교회가 새롭게 회복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이런 다윗과 같은 목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릴 교회를 이렇게 변하지 않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진리와 생명 그리고 사랑에 굶주린 성도들이 이 넓고 넓은 세상,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유독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나와의 만남을 통해 한 목회자가 힘을 얻고 목회에 전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바로 나를 통해서 어둠 속을 헤매던 한 인생이 주님 품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감격적인 삶입니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그 한 사람…
세월이 흘러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 그 한 사람…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영혼을 양육하고 키우는 그 벅찬 일에 목사와 함께 동역하는 섬기미, 목자…

당신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하나님이 찾는 성도입니까?
여전히 교우들이 찾는 권사입니까?
여전히 목사님이 찾는 섬기미, 목자입니?
여전히 우리 교우들이 찾는 목사님입니까?

가을 단풍이 교회 전경을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나이들도 변함이 없는 단풍과 같은 성도..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단풍처럼 아름답게 주변을 세워주는
그 사람이 되세요...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1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