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확신과 자기 체면을 믿음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토록 많은 예배와 그토록 많은 날을 기도로 그리고 열정적인 찬양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변에 믿음의 인격적 감화인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체면인 허망한 자기 망상에 대한 병적 집착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에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따릅니다.

첫째, 주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둘째,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첫째 전제 조건, 주님의 말씀을 믿는 까닭은 먼저 주님의 인격을 믿기때문입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인격을 믿기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중요합니다.

미국은 뉴스를 전하는 앵커에 따라서 시청율이 올라가고 내려간다고 합니다.

앵커의 수준이 곧 그 뉴스의 사실까지 좌지우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의 영향력의 현상으로 보게 됩니다.

한국도 이런 현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KBS, MBC 방송사를 신뢰하고 뉴를 들었는데 요즘은 JTBC의 뉴스를 제일 인정하는데

그 이유가 그 뉴스를 전하는 앵커를 신뢰해서 라고 합니다.

 

한 인간의 인격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비로서 주님의 인격이 그 사람의 삶에 나타납니다.

뉴스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자의 인격이 신뢰가 안 간다면 그 뉴스는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성경 말씀이 주님의 인격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른 믿음의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하고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른 믿음이란 주님의 인격에 나의 인격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구든 바른 믿음으로 자신의 인격을 주님의 인격에 송두리째 맡긴다면,

믿음의 연륜이 쌓일수록 그의 인격은 반드시 주님의 인격에 동화되는 믿음이 됩니다.

둘째 전제 조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입니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겪는 상황도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 다앙하게 주어진 현실에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좋은 날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날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고통의 날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무서운 시험이 몰아치는 상황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상황에서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에서만 순종한다면 그 믿음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 상황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주님은 게셋마네 동산에서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그 고통의 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그 상황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순종했습니다.

바로 그 주어진 환경에서 순종이 바른 믿음입니다.

한국 역사에서 조만식 장로님의 믿음과 인품은 다 인정합니다.

조장로님의 제자인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목회할 때

당시 좌우 이념 싸움이 치열해서 어느 주일 날 조장로님이 민족 회의 참석하다가 늦게 주일 예배에 들어갔습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으려는 순간에 제자인 주기철 목사님이

“조장로님 어떻게 예배에 늦을 수 있습니까? 오늘 예배는 그 자리에서 서서 드리세요”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 교회 교우들이 이런 주어진 상황에서 조장로님의 행동을 주목했습니다.

조 장로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은 두 가지였습니다.

화가 나서 교회를 나가든지, 아니면 이런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순종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조장로님은 그런 치욕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순종을 선택해서 교우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조장로님의 믿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의지하지 않고
주기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이란 이렇게 주어진 상황에서 보여지는 것임을 후세대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바른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의 인격을 온통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주어진 상황에서 순종할 때의 주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에 배어나는 법이요,

우리 삶에서 신자다운 위엄이 묻어나게 됩니다.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 끝나고 한 권사님이 오늘 기도한 내용을 갖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먹고 마시면서 육체의 배부름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를 일컫어 식충이라 부릅니다.

짐승 혹은 곤충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요.

먹고사는 것을 뛰어넘어 문화적 교류를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는 자는 문화인으로 불립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자는 종교인으로 분류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크리스찬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의 뜻과 계획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격과 뜻에 송두리째 맡기는 자입니다.

신자란 두말 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성도의 본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참된 믿음이란 관념이나 입술에 머문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에 동화되는 신자의 삶 자체임을 알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

조건이 어떻다든지 순종할 때에 비로소 바른 믿음의 삶으로 참된 크리스찬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살기에서…10/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