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상한 감정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림움이 확 밀려왔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묘한 상실감, 죄책감,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거부감으로 나를 몰고 가는 것입니다.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현실을 도피하게 모든 것을 거부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볍게 말합니다.

“당신 우울증에 들어간거야.

당신처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면 큰 일 나…”

인정하기 싫어서 부정했는데 생각보다 감정이 나를 지배합니다.

저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면서 초 낙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허허^^

최근에 충격적이면서 슬픈 사건이 있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8월에 캘리포니아의 치노에 한 젊은 목회자가 자살했습니다.

이 일로 크리스찬 저널과 같은 교회 여론이 목회 환경을 둘러싼 목회자의 상황을 돌아보자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회 환경을 둘러싼 교인들의 지원과 동역의 현실을 돌아보자는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치노에 위치한 인랜드힐스 교회의 담임인 앤드류 스택클라인 목사는

8월 24일 교회에서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다음날 사망했습니다.

불과 30살의 나이에 사모와 세 아들을 남겨두고 떠난 것입니다.

스택클라인 목사는 그 지역에서 활발하게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최선의 열정과 헌신이 갈수록 부담이 되어서 최근 우울증 등으로 4개월 간 안식월을 가진 뒤

8월에 돌아와서 8월 12일 주일 예배부터 사역을 다시 시작 한 것입니다.

스택클라인 목사가 목회하는 인랜드힐스 교회는 치노 지역에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가 이 교회의 담임목사였는데 2015년에 갑자 사망한 후에 20대의 젊은 나이로 스택클라인 목사가

아버지 뒤를 이어 담임 목사를 승계했습니다.

불과 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난 것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어떤 신화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절대로 감정 기복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영성이 강하기에 절대적으로 우울증이나 감정 변화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 행정, 재정, 심방, 모든 교회 일에 희생하는 수퍼맨의 기질을 목회자는 갖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기에 절대로 우울증과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거라는

이상한 자신감을 목회자에 대해서 교우들이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강의 할 때에 “현대 교회, 자살 우울에 노출된 목사”라는 경박한 글을 쓰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의 자살 방지에 관한 글이 아닌 건강한 목회를 위한 교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생각이었기에 그렇게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목회자 리소스에서 내놓은 학설 중에 목회자들 가운데에 4/3이 교우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교우들의 후원을 받지 못한 상태의 목회자들은 이런 현실에서

자신의 사역을 그만둘까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인 후원을 하지 않아도 목사들이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교우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의 열등감, 사임과 같은 내적 갈등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목회 현실에서 오는 과중한 업무 부담의 스트레스와 교우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이런 갈등이 목회자들에게 이상한 취미, 성경적인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유혹의 현장으로 끌고 간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원인이 됩니다.

최근에 교회들마다 이런 걱정을 합니다.

책임감과 헌신도가 낮은 교인들이 많아져서 교회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대한 출석률이 떨어지는 원인 분석을 설교에서 찾고 목사들이 오직 설교에만 온 힘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교회 시설은 낙후되어서 재정적 후원이 절대적인데 성도들은 교회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얻으려 하지

교회 필요에 대해서 희생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는 어떻게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수퍼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기 능력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미국 목회자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앞에서는 성도에게 칼을 맞고 뒤로는 교회 스탭들에게 베인다”

”주변 교우들의 냉소적이면서 부정직인 비난에 표현은 않지만 상처가 많다.”

그래도 미국 목회자들은 가끔 자신의 내면을 표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목회자들은 자신들을 공격하고 후원하지 않는 목회 현실에 대해서

교회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만 참으면 된다고 해서 참는다고 합니다.

자신들 보다 더 수준높은 인격, 더 높은 윤리적 삶을 정해놓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참는데

그 이유가 교회에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런 목회 현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버틴다는 말을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쏟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은 설교 제목이 재밌습니다.

“목사가 몰래 숨어서 흘리는 눈물은 누가 닦아 주나…”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회자를 돕는 유일한 길은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나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그의 사역에 동역자입니다"

라고 선언하고 나서라고 합니다. 

 

교우들이 목사를 지지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목사들이 앎으로서 자신이 처한 현실의 냉소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영역이 성역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몇 타락한 목회자들의 처신으로 공개적으로 목회자를 흔드는 언론,

비판적 교우들로 인해서 자신의 감정의 어려움을 표현 못하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인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더욱 좋은 우리 교회가 더 위대한 건강한 공동체가 되어서 많은 교회들에게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공동체라는 사실은 목회자가 포함됩니다.

목회자도 공동체의 도움과 격려를 받고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더욱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개인의 영성이 모아지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이 내가 약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강한척 하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좀 힘들면 힘들라고 이야기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이야기 해야 되는데…

우리 시대에는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목회자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에서 이 지역의 목사님들을 놓고 기도경호했습니다.

교회들안에서 좋은 동역자들이 목사와 함께 건강한 교회를 세우길 간구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권면하셨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치노 지역의 건강한 교회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나를 돌아보고 오늘 모든 교회들이 한번쯤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양승원 목사의 주님과 하루 함께 하기에서…201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