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글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이 글이 내 가슴에 송곳처럼 꽃혔다.
“성도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나의 유용성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유용성이 교회 부흥에 크게 쓰임 받는다고 믿었다.

내가 필요로 하기에 이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 자신의 유용성(쓰임 받는다)에 대해서 공감을 하기도 했다. 
“이 교회는 개척한 교회이기에 내가 필요한 것 같다.”
“이 교회는 일군이 필요하기에 내가 좀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적은 교회, 사람이 필요한 교회에 가서 도와주는 은사가 있다.”
“이제 이만큼 이 교회에서 봉사하고 키웠으니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로 옮겨야겠다.”

그런데 오스왈드는 이런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래서 급히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이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는 착각에 속지 말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시니 나는 이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하기에 나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성이 사라지면 그 다음에 떠나는 이유가 된다.

이곳에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교회에 온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하고 이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교회를 부흥케 하는 나의 유용성이 아니다.

책 여백에 이 글을 새겼다.
'내가 교회가 필요 한 것이지,
교회가 내가 필요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면 교회가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내가 필요로 하는 교회를 찾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현대 교인들이 교회를 옮길 때에 이런 귀여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새벽 기도회에 이 지역 교회들을 놓고 이 고백을 했다. 
“교회를 판단하는 심판자가 아닌,
교회의 진정한 탁월함을 위해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께 시선을 길게 갖는
마음을 모으는 내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렇다.

교회의 탁월함은
성도의 숫자에 있지 않고
주님을 향한 순전함에 있다.

기도가 이런 교회를 만드는 주님께 시선을 길게 갖게 한다.

기도로 내 시선을 가까운 사람, 환경을 넘어서 길게 하나님을 향한다. 

 

더욱 기도로 길게 하나님을 바라보자.

시선이 짧으면 곧 후회하는 결정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