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성도들의 안타까움을 듣게 된다.

"목사님, 제대로 예수 믿으려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요?"

"목사님, 우리 교회가 새롭게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왜 저런 사람들이 계속 나타날까요?"

 

지금가지 사역하면서 얻은 답, 결론이다.

이 결론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나도 무너지고, 당하고, 고통의 펀치를 받으면서 얻은 것이다.

 

정상적인 신자라면 어떤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 문제가 해결이 되면 새롭게 마음 먹고 다시 시작한다.

이제는 이런 종류의 어려움이 오지 않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출발하는데 그 동일한 어려움이 또 온다.

사람과 시간만 달라졌지 공격하는 내용은 똑같다.

너무 똑같기에 진부하고 지겨워서 우리가 포기할 정도이다. 

 

난 성격적으로 나이브 할 정도로 낙천적이기에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늘 새롭게 출발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새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똑같이 나에게 저항하는 그 세력은 지치지도 않고 쉽게 공격한다.

사람만 바뀌었지 공격하는 소재는 늘, 앞으로도 평생 똑같을 것 같다. 

 

이런 반복적인 공격을 당하고도 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새롭게 또 출발하고 또 시작했다.

그러면 저항하는 세력도 동일하게 새롭게 출발한 나에게 저항하고 또 공격한다. 

 

이런 반복을 통해서 결론은 이것이다.

허물어진 내 삶을 믿음으로 다시 세워나가는 신자들에게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무너진 공동체를 새롭게 다시 세워나가는 일에 반드시 저항하는 세력이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넘어진 후에, 무너진 후에, 회복을 시도하는 교우들이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그 열정만큼 우리를 공격하는 그 세력도 동일한 힘으로 우릴 공격한다는 것이다.

물론 무너진 후에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면 저항하는 그 세력은 우릴 포기할 것이다.

 

무너진 후에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한 저항하는 세력은 계속 공격한다.

문제는 우릴 무너뜨리는 그 세력이 아니라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우리는 질리고, 짜증이 나는데 그 세력은 반복하는 그 공격에 전혀 짜증내지 않고 질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우리를 공격하는 것에 즐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목회하면서 얻은 역설적인 자신감이다.

나를 계속 공격하는 그 세력은 나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너진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이 두렵기에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새롭게 시작하는 나를 향한 공격은 내가 제대로 무너진 공동체를 세운다는 것을 그 세력이 알기에 그렇다. 

내가 제대로 공동체를 세우고 있음을 저항하는 세력의 공격의 강도에 따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지난 46/5주년 역사에서 우리 교회는 늘 새롭게 움직였다.

목사인 난 교회의 무너진 곳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했다.

교회 이름을 바꾸었다.

새로운 리더십 시스템을 만들었다.

예배를 늘 새롭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복음 전파의 그릇인 문화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새롭게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저항하는 그 세력도 사람만 다르지, 똑 같은 내용을 갖고 공격했다.

이런 저항하는 사탄의 공격읅 통해서 난 우리가 제대로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확신했다.

 

사탄은 움직이는 목표물에만 화살을 쏜다.

무언가 새롭게 일어서려고 하는 공동체를 겨낭한다.

가만히 있는 교우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 교우들을 공격한다.,

 

그러므로 엄청난 저항이 있다는 것 때문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우린 46/5년의 역사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 갈 것이다.

이역사는 저항하는 세력 앞에서 승리한 자들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