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홈 페이지가 만들어져서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과 같은 표현은 친근감과 포근함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섬기미들이 주일 예배 대표 기도를 할 때에

'양목사님...' '담임 목사님...'란 표현보다 '우리 목사님'이라는 표현을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라는 개념은 공동체적 개념입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거기에는 나를 포함한 내가 소속된 집단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외 됨 없이 소중한 사람임을 전제합니다.

너와 나의 합으로서의 “우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단어에는 내가 절대적일 수 없으며,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우리”안에 들어온 사람들과 합일을 이루려는 것만이 최고의 생각이며 행동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찾아보니까 양의 “우리”를 발견하였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양들의 안식처가 “우리”입니다.

안식처를 우리말로 하면 쉼터입니다.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지요.

 

하루종일 광야에서 풀을 뜯어먹고 사나운 이리나 사자를 의식하면서 목숨을 이어가는 양들에게는 “우리”가 안식처가 되고 삶의 쉼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만 들어오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위협이 사라집니다.

다른 동물들의 사나운 공격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하루의 피곤함을 푸는 “우리”를 양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이름을 4년 전에 제2의 개척을 하면서 '우리 교회'로 바꾼 이유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곳에서 45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15에이커의 큰 울타리를 가진 교회..

예배당과 체육관이 있는 이런 교회가..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찾아올 수 있는 하나 정도의 교회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우리 교회 이름을 지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숲과 같은 교회에 우리 교회라고 하면서 찾아 올 수 있는 교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우리”가, 쉼터가 우리 교회입니다.

너와 나의 구분됨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인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소중한 지체이며,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이 소중한 사람들이 바로 나의 “우리”이며, 나는 저들의 “우리”입니다.

 

여기에는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라는 전부를 위해서만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를 주장한다면 우리의 쉼터인 “우리”는 깨어집니다.

나를 남보다 더 낫다고 여기면 그때부터 “우리”라는 울타리는 사라지고, 쉼터로서의 교회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안에서 나를 바라보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우리”인 쉼터에서 안식을 누려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