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라는 말이 있다. 유비가 제갈 공명을 알아보았고 조조가 관우를 알아 보았다.

그래서 사람을 볼 줄 아는 눈과 사람을 잘 다루는 기술, 즉 용인술에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아직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때 그 분을 알아본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침례 요한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러 오실 때 그가 누구이신지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요1:29)

 

침례 요한은 지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즉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오실 그 분도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요즘 말로 사람을 판단하고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헤롯 안디바의 일로 토굴 감옥에 갇혔다. 그는 고통스러운 감옥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들었다. 그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하는 말을 보라.

 

‘...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이 의심하게 된 근거는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의 하시는 사역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에 따른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꼐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61:1)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라면 지금 마음이 상하고 갇힌 상태에 있는 자신을 왜 구원하시지 않는가..라고 요한은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은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 이스라앨을 압제하는 이방민족에게서 강력한 리더쉽으로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다윗의 위에 앉아 영원히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강력한 왕.. 그런 메시야 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주님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많다. 내 생각과 기준에 주님을 가두어 놓는다.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처한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그 분의 길을 우리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와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

 

침례 요한은 그의 고통스러운 상황 때문에 예수님의 영적인 사역을 오해하고 말았다. 우리도 우리의 처한 상황으로 인해 얼마나 그 분을 오해하고 있는가.

 

얼마전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일정표안에 있습니다...’ 라는 글이 생각이 난다.

 

그렇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은 나를 목적지로 이끌어 주신다.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일정표 안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보신다. 그 분의 탁월한 용인술로 우리를 사용하신다.

 

오해하지 말자. 내가 믿는 하나님!.

지금 내 상황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다를 수는 있어도 그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알아보시고 안전한 목적지로 이끌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