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4장

 

다시 주저 않는 나

 

4장에 보여지는 내 모습은 5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번 반복되는 동사가 있지요. ‘앉되’입니다. 바로 전 장 3장에서 열심히 뛰어가고 달려가는 내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4장에서 난 다시 주저않았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다시 주저앉은 내 모습은 하나님의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구경꾼의 자리로 간 것입니다. 3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모릅니다. 난 일군입니다. 사역의 현장에 다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저앉아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는지 방관자의 자리로 갔습니다.

 

일군이 어떻게 방관자로 갑자기 바뀝니까?

 

1절에 내 마음이 소개됩니다. 내가 무엇을 싫어했는지 발견했습니까? 하나님이 니느웨 성을 저주하지 않고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2절도 보세요. 여기서 나를 통해서 이 시대의 성도들의 문제도 엿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기심이 복음의 장애물입니다.

나는 원수 민족이 망하기를 원하는 민족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이 편견 때문에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기심을 극복하지 않고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가 이기심이라는 것 동의합니까?

 

둘째, 자기 본위로 하나님을 인식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내 멋대로 만들고 믿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 국가인 니느웨를 망하게 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화를 통해서 나의 마음속에 잘못된 하나님 관을 바로 잡아 주시려 했습니다. 잘못하면 내가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관이 빨리 정착되어야 합니다.

 

셋째, 피곤과 낙심입니다.

4절 이하를 보면 내가 무척 피곤한 상태임을 발견합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 육체적으로 피곤하니 영적인 것이 장애물이 됩니다. 피곤과 낙심이 날 주저앉게 만들었습니다. 번아웃이 영적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나를 사용하십니다.

나를 하나님은 아직도 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주저앉은 나를 오랜 시간 방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위해서 다가 오십니다. 난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 분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6절 보세요. 주저 앉은 나의 머리 위에 박넝쿨 그늘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시청각 교육을 하셨습니다. 7절 보세요. 이번에는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나는 시원한 박넝쿨 그늘 아래서 기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벌레가 나오더니 그늘을 이루고 있는 넝쿨을 다 씹어 먹었습니다. 8절 보세요. 이번에는 뜨거운 동품이 나에게 불어왔습니다.

 

‘준비’라는 말이 여러번 내 책에서 등장하지요. 하나님은 폭풍을 준비했습니다. 동풍도 준비했습니다. 박넝쿨도 준비했습니다. 물고기도 준비했습니다. 왜 이런 많은 자연들을 준비했습니까?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뜨거운 동풍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동풍이 그늘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나에게 밀려오자 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9절 보세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나의 건방진 대답을 들어보세요.   

 

이제 내 이야기의 가장 절정에 이릅니다. 10-11절 보세요. 이 말씀 이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기 박넝쿨의 교훈을 통해서 니느웨 성의 영혼들을 아끼시는 자신의 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치를 정하는 순서를 보세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하나님의 안목 앞에서 날카롭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많은 식물보다 훨씬 더 동물을 귀중하게 보십니다. 니느웨 서에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육축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육축의 숫자는 세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주께서 세십니다.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들이 십이만 여명이요.’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로 해석하는데 니느웨 성의 영적인 어둠과 영적인 빛을 분별하지 못하는 인구 전체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모든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계셨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사람 한 사람인 십이만 여명 그 영혼들을 내가 아끼는 것이 왜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나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난 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잃어버린 생명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난 그 영혼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시원하게 앉아 있는 박넝쿨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시원한 그늘 아래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시원함을 거두어 가시기 위해 벌레를 준비하십니다. 당신의 은행에 벌레가 들어갑니다. 당신의 건강에 벌레가 들어갑니다. 내가 무엇이 더 소중한지 알게 하시기 위해서 박넝쿨의 시원함을 즐기고 있는 그 순간에 이 벌레를 준비하실 수 있습닏. 그 벌레는 우리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내 쫓을 수 있습니다. 가치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세요.,

 

나의 이야기 결론

하나님은 한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늘 시원한 그늘 아래에 있는 내 주변의 것들입니다. 가족, 직장, 건강입니다. 그런데 누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책임집니까? 복음의 전파라는 위대한 사명을 꼼꼼하게 묵상하신 적 있습니까? 수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 소원에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싫어합니다. 편하고 환경 좋은 다시스로만 가려 합니다. 좀 더 시선을 크게 넓게 보세요. 주님의 사명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원한 박넝쿨 그늘을 즐기면서 세계를 품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사명을 불순종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또 다른 내, 요~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12:4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보다 더 큰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복음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까? 복음, 한 영혼을 위해 삶을 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