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물고기 배속에서 기도만 했습니다.

난 물고기 배속에서 부모, 가족, 다른 것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생각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생각났습니다. 7절 보세요. 그래요. 우리는 평안할 때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물고기 배속이라 생각해 보세요.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기도 안할까요?

여러분은 그곳에서 내 기도가 어떤 모습인지 아세요? 난 물고기 배속에서 수사학적인 기도 문장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나왔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의 주님…어쩌고 저쩌고….’이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 상황이 이런 수사학적 표현이 필요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처음으로 가장원색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정신 똑똑히 차리고 신앙 생활하겠습니다. 다시 말씀, 기도, 섬김, 복음 전할께요.” 정말 내 평생에 이렇게 솔직하고 간절한 기도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다 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간절하게 구했습니다.

얼마나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기도가 끝났습니다.

난 그 캄캄한 물고기 배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난 이제 난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내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얼굴에 온갖 해초류와 지저분한 것이 온 몸에 붙어 있는 그런 내 모습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추한 내가 거룩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난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라는 그 부담스러운 명령, 아니 설교를 들은 후부터 내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내 철학, 가치관, 자존심을 건드렸던 하나님이 미워서 내 기억의 망각으로 그 분을 옮겼는데 다시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난 듣기 싫은 하나님의 말씀에 늘 반발했습니다. 부담스러운 말씀은 의지적으로 안 듣고 불평했습니다.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요?

그런데 참 희안해요. 어떻게 하나님이 그 캄캄한 물고기 배속에서 생각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사가 평안 할 때는 생각이 나지 않았던 하나님이 캄캄한 빛 하나 없는 그곳에서 얼마나 생각나고 그리웠는지 몰라요.

아마도 내가 그 분을 아주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보고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곳에서 하나님이 날 찾아와 주신 겁니다.

그거 아세요.

나에게 그곳이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외적으로는 고통스럽고 죽음과 같은 암흑이지만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의 자리가 된 그 물고기 배속은 나의 신앙의 부흥의 자리입니다. 은혜의 자리입니다. 놀라운 신앙의 역설의 자리입니다.

감사하세요.

이런 깨달음이 오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9절 보세요. 최근에 한번도 감사를 고백한 적이 없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한 후부터 불평, 원망, 분노가 내 영혼을 채웠습니다. 설교만 들으면 화가 나고, 요구하는 하나님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 감사의 언어가 사라진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의 배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사가 내 입술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난 확신했습니다. 이곳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 기도에 분명 응답하셨으니까요? 내 기억속에서 붙잡고 계시는 그 분이 드디어 체험되었습니까요.

감사가 문을 연다는 시편 기자의 말은 진리입니다. 불평은 모든 열려있던 문까지 닫습니다. 내가 감사하자 드디어 물고기 입이 열려서 내가 나왔습니다. 감사는 상황이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감사는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만 고백한다면 어떤 상황이건 나처럼 살아납니다.

기억하세요.

내가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내가 일시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났지만, 내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었지만, 내 깊은 영혼의 바닥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난 하나님이 없던 것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그냥 안 믿는 것처럼 거칠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움이 오자 잊고 있었던 기도의 무릎을 그곳에서 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생각난 것입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기억속에서 살아납니다. 기도가 만사입니다. 시간이 없어도 기도하세요. 일부러 만들어서 기도하세요. 평생 기도의 상황은 오지 않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할렐루야 살아났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고 한 시각이 지나자 캄캄한 물고기 배속으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요나를 토하거라.” 난 육지로 내동이쳤습니다. 난 육지로 나왔습니다. 난 다시 살아났습니다.

후대에 날 연구했던 데이도르 엡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물고기는 얼마나 위대하나, 이 물고기는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신학대학이었다.”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난 물고기 뱃속에서 전혀 다른 요나로 변신했습니다.

내가 변했습니다. 물고기의 뱃속에서 요~나는 예전의 요나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난 하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다시 기도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늘 화가 났던 내 입술에서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드디어 옛 사람으로부터 졸업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불평, 화남, 원망에서 졸업을 간절하게 원했는데 드디어 졸업하고 기도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새 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나에게 말씀했던 주님이 '요~나'를 읽는 분들에게 말씀합니다. ‘토하라’

어떤 환경이세요. 하나님이 ‘토하라’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다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권세가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불평을 향해서 선포하세요. 내 안에 미움을 향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세요. 내 안에 교회를 향한 열정이 사라진 것을 향해 선포하세요. “토하라!”

한번 해 보세요. 나를 묶고 있는 것들이 다 풀립니다.

이제 나는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 자유가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서 사용됩니다. 나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3장에서 계속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