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중심으로 2번의 이야기가 올려졌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스페인으로 도망가는 날 어떻게 추적하는 것일까요?

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관광객으로 이제 편하게 스페인 가는 배를 탔습니다. 내 양심은 화인을 맞아서 그런지 너무 편안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와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난 모르겠는데 갑자기 대단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엄청난 사건이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세요. 난 하나님을 너무 몰랐습니다. 많이 알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이게 무서운 신앙의 함정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 주변에 많았는지 몰랐는데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바다의 큰 풍랑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난 발견했습니다. 그 분은 세 가지의 속성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심을 철저하게 경험했습니다. 내가 선지자인데도 하나님을 너무 몰랐습니다. 신앙 생활을 너무 피상적으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전지성)

내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는지, 내가 지금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등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에 관해서 나보다 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나를 추적하시는 그 분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은 귀찮습니다. 이제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내 생각대로 계획하고 움직이고 싶었습니다. 이런 날 그만 내버려 두시면 좋겠는데, 나를 다 아시고 추적하시는 것이 참 싫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인생의 절망의 밤을 만납니다. 고독한 밤을 만납니다. 가슴을 치고 싶은 난관의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아무도 내 곁에 있지 않고 다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아는 어떤 분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떠나지 않고 날 지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 다 계시는 하나님입니다.(편재성)

난 니느웨에서 멀리 떨어진 스페인 다시스로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무서운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스페인에도 계십니다.

왜 난 오랜 세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몰랐을까요? 범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현장에 기시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범죄의 현장에도 계셨습니다. 감쪽같이 모두를 다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있는 지금 이 현장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내가 나쁜 짓을 할 때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내가 음모를 꾀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든 곳에 계시는 편재성은 분명히 나에게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이 나에게 왔습니다. 우리가 연약해질 때마다, 우리가 한없이 무력해질 때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도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만약 하나님이 그 자리에 없으시다면 난 어디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전능성)

내가 도망가고자 하는 바다에 태풍을 주관하여 나를 추적하시는 하나님은 자연을통치하시는 분입니다. 태풍을 일으키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새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엄청난 풍랑을 일으키어서 그 큰 배가 일엽편주가 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스페인으로 도망하는 날 추적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맞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신 하나님, 내가 지옥에 가도 거기 계신 하나님, 내가 저 바다 끝에 가도 새벽 날개를 치며 거기에도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날 추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허허